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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로그에 쓴 글이라 평어체 양해부탁요~


한화 팬들은 기본적으로 상당히 폐쇄적이다. 팀 레전드들도 많았고 팀 분위기 자체도 들어오는 선수도, 나가는 선수도 적은 그야말로 지역 공동체 성향이 강한 팀이었다. '충청도 양반들'이란 말마따나 기본적으로 크게 마찰이 없는 순한 편의 팬베이스이지만, 인터넷 등에서 과격하게 활동하는 사람들이 적어서이지 한 번 불붙으면 어느 팀 이상으로 거하게 한 판 붙고야 마는 그런 팀이기도 하다.

그런만큼 한대화 감독이 처음 선임되었을때 '그렇게 열망하던 고향팀'이라는 것 외에는 팬들에게 어필할 것이 별로 없었다. 선수 생활을 한화에서 한 것도 아니고, 오히려 번번히 빙그레 이글스의 앞을 막는 주적 중에 하나였으며 워낙 엘리트 이미지가 강했던지라 다소 촌사람처럼 순박한 분위기의 한화에 어울릴 것 같지가 않았기 때문이다. 더구나 장래의 감독감이라는 팀내 레전드들이 줄줄이 대기중인 상태에서 더더욱이나 여론이 좋지 않았다. "이제야 왔구먼" 이라는 그의 말 한 마디 때문에 많이 수그러들었던게 그나마 그정도.

2008년 여름 이후 한화는 귀신같이 추락을 거듭한다. 지금 봐도 믿어지지 않을 정도로 그 전까지 포스트시즌 단골 손님이었던 것같지 않게 팀 전력이 와해되고 만다. 거기다 때를 맞춰서 팀의 주력이었던 김태균, 이범호는 일본으로, 송진우, 구대성, 정민철 등 노장들은 은퇴하고 결국 꼴찌로 마친 09년보다 팀 전력이 4할도 채 안남아 있다고 할 정도였으니까. 드라마틱한 붕괴 이후 당면한 암흑기, 8개팀 정착 이후 첫 꼴찌, 거기다 꼴찌한 전력보다 더 약화된 정말 거덜난 전력. 환영받지 못한 감독 한대화는 시작부터 소수의 '동정 여론' 외에는 좋은 점이 하나도 없었다. 정말로.

거기다 장성호 트레이드, 선수 운용에 있어서 팬심과 다소 이반되는 모습, 한 해를 퍼부어서 1군에서 선수들을 조련하는 듯한 지나친 작전야구 개입 등. 2010년의 한대화 감독은 정말 최악의 한해 였을것이다. 그래도 안쓰럽다며 유지되던 동정 여론마저 장성호 트레이드 이후로 반 이상 사라졌고, '어차피 거쳐가는 감독'이라는 굴레 하에서 팬들조차 지나치게 리빌딩에만 목메였던 시절이 있었다. 자신을 도와주는 사람이라곤 삼성에서 같이 온 베테랑 코치 두엇과 커리어 하이 시즌을 보내며 완벽한 대한민국 에이스 모습을 보여준 류현진 정도가 전부였다.

그리고 당연하게도 2010년은 여러 논란과 어려움을 간직한채 꼴찌로 마감하게 되었고, 그 꼴찌 전력에서 주포 김태완마저 군입대로 또 빠지고 만다. 첫 8위였던 2009년에 비해서 최진행의 가세 외엔 조금의 정상 전력 자체가 없었던 것이다. 정말 최악 중에 최악의 시기를 보내며 맞이한 2011년 시즌이 다가왔다.

4월은 당연하게도 이길 경기 못 이기고 싸워볼 만한 경기도 내주는 부진끝에 -10 정도를 기록하며 압도적인 꼴찌로 쳐진다. 아직까지 뚜렷한 원인을 알 수 없지만 류현진의 부진 자체도 작년 한대화 감독의 혹사 때문으로 보는 사람들도 많았다.(물론 이게 아예 틀린 말은 아닐 것이다.) 유이하게 기대해볼 만한 반등요소는 그래도 클래스는 살아있으려니 하는 혹시 모를 장성호의 복귀와 초반에 액땜했다 치고 작년에 준하는 모습을 기대하던 류현진이 전부였다. 정말로.

그리고 맞이한 5월, 그 전설의 "예끼 니미 X발"과 더불어 한화는 놀랍게 달라졌다. 압도적인 승률을 기록한 것도 아니다. 정확히 5할 승률을 맞추고 어찌저찌 좀 한다 싶을 정도의 성적. 하지만 중요한 것은 한화의 전력 자체는 4월에 본 바와 같이 '압도적인 꼴찌'를 했어야 마땅했다는 것이다. 외국인 선수 두 명마저 최악의 부진으로 떨어지고 류현진의 컨디션은 계속 오락가락 하는 와중에 상위권팀을 상대로, 에이스나 외국인 선수 등 잘하는 상대 선발을 거의 5월 경기의 절반 이상 만나오면서 이 최악의 전력으로 5할 이상의 승부를 펼친 것이다.

최초에 인터넷 커뮤니티에서 지나치게 작전야구를 펼치고 경기를 말아먹는 모습을 보고 '야신' 김성근 감독 아류작이라며 야왕이라고 빗대 부르던 시절이 있었다. 하지만 5월부터 점차 달라지더니 이 미칠듯한 선전을 이끄는 모습을 보고 사람들이 진정으로 감동하기 시작했다. 그렇다고 어쩌다가 팀 컨디션이 좋았던 시기와 맞물려서 얻은 공짜 별명도 아니다. 승부처에서 타자들을 직접 불러서 원포인트 레슨을 하는게 귀신같이 맞아 떨어지기 시작했으며, 선수들도 이 악물고 집중력을 가지고 경기를 펼쳤다. 때때로 투수 운용에 있어서 아쉬움이 있던 경기도 있지만 모두가 지는구나 했을때 기용한 선수들이 드라마틱한 승부를 펼쳐 결국 승리를 따내는 모습도 흔하게 나왔다. 이제 더는 지고 있으면 도저히 여력이 안 되어 그대로 주저 앉는 약해빠진 팀이 아니라 악착같이 볼을 골라내고 어떻게 해서든지 공을 잡으며 조금이라도 점수를 내기 위해 전력으로 뛰는 선수들이 아예 팀 전체와 같이 되버린 것이다. 단순히 승패여하를 떠나서 이런 모습에서 감독의 역할을 우습게 볼 사람은 없었다. 진심으로 한대화 감독에게 야왕이라는 호칭이 어울린다고 여겨지기 시작한 것이다.

대대로 한화는 두산, 삼성 등의 팀에게 극상성을 가지고 이기기 힘들어 했었다. 하지만 놀랍게도 올해 한화는 두산, 삼성에게 더욱 강한 면모를 보이며, 어제 경기로 대 삼성전 6승 3패, 3시리즈 연속 위닝 시리즈를 장식했다. 우승 이후 팀의 전력이 최고로 올라왔다고 생각되었던 06, 07년에도 삼성전, 두산전은 상당히 처참했던 기억 뿐이었는데, 이따위 전력으로 오히려 상대방으로 하여금 초조함을 느끼게 만들 정도로 좋은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부진하고 있는 전직 에이스(...) 류현진만 정상이었더라도 지금보다 최소한 4~5승은 더 치고 올라갈 수 있었다는 점에서 더욱 놀랍다. 1선발과 4번타자가 극도의 부진에 빠져있는 팀이 이런 놀라운 행보를 거듭하다니, 한화 팬들은 이해하지 못할 기쁨에 얼떨떨했고 다른 팀 팬들은 쉽게 물러나지 않는 한화의 경기를 보면서 박수를 보내기 시작했다. 급기야, 물론 순위 경쟁팀의 맞상대라서 그런 점도 있지만 잠실 3루에서 한화를 함께 응원하는 엘지, 롯데, 삼성, 기아 유니폼도 제법 자주 보이게 되었다. 비아냥으로 시작된 야왕이라는 별명이 현실이 되버린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대화 감독은 우쭐대거나 그러질 않는다. "7위 팀 감독이 야왕이면, 4강 가면 뭐라고 부르려고?" 라며 쑥쓰러운듯 핀잔을 주질 않나, 팬들이 직접 건네준 '세종대화 드링크' 음료수를 받으면서 너무 쑥쓰러워하면서도 두고두고 간직하겠다고 좋아하는 모습을 보면 순박할 정도의 인상이다. 어느새 종종 하게된 승장 인터뷰에서 다음날 선발투수 이름을 잊어 버벅이기도 하고, 리포터가 야왕이라는 이야길 꺼내면 아직도 부끄러워서 미묘하게 몸을 트는 모습을 볼 수 있다. 팀의 승리는 아낌없이 선수들에게 돌리고 패한 경기에서도 질책하지 않는다. 그러면서도 항상 책임감을 강조하면서 이 고도의 집중력을 유지시키고 있는 가장 큰 원동력은 분명히 한대화 감독의 역할이 크다. 잠깐도 아니고 근 한달동안을, 그것도 에이스와 4번타자가 들쭉날쭉한 컨디션을 보여주는 2년 연속 꼴찌팀, 이 전력으로 득점권 타율 3할과 승률 5할 이상을 유지하고 있는 것은 진정으로 마법을 부리는 것이 아닐까 싶을 정도이다.

어느새 한화의 선발진은 다른 팀 팬들이 모두 부러워하는 젊고 경쟁력 있는 5선발이 구축되었다. 긴가민가하며 신뢰가 안가던 거포 유망주는 다소 기복은 있을지언정 당당한 4번타자로 올라섰다. 방출당하거나 사실상 내쳐져 읍소하다시피 데려온 선수들은 죄다 커리어 하이를 찍을 기세다. 그 어느 팀보다도 기본기가 부족했던 한화 선수들은 이제 자기가 해야할 몫은 적어도 최선을 다해서 척척 해내기 시작했다. 물론 김-고-추같은 쩌리도 존재하지만 그야말로 스포츠 성장 드라마가 있다면 이런 모습일까 싶을 정도로 모든 팀이 하나가 되어 나아가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들에게 동기를 부여해주고 귀신같은 한 수를 계속해서 성공시키고 있는 수장이 바로 야구의 왕이란 칭호가 아직도 쑥쓰러운, 野王 한대화이다.

지난 주말 삼성의 류중일 감독은 주중 한화전을 앞두고 "이제 최고의 팀이랑 상대하게 되었네" 라고 말했다. 두산의 김경문 감독도 한화 팀에게 경의를 표한 바가 있다. 아직 순위는 겨우 꼴찌를 벗어난 7위 팀이지만 그 누구도 호락호락하게 생각하지 못하는 "기적의 팀"이 지금의 한화이다. 분명 언젠간 기세가 꺾이고 집중력이 떨어져서 슬럼프에 빠질 시기가 올 지도 모른다. 한대화 감독이 야왕이라는 칭호를 맘놓고 듣지 못하는 이유가 그런 데에 있다. 하지만, 야왕과 한화 팀은 그 어떤 팀들보다도 더욱 승리를 열망하고 팬들에게 부끄럽지 않게 최선을 다하고 있다. 그러한 모습이 너무나도 절절하게 느껴지기에, 한화 팬들뿐만 아니라 다른팀 팬들에게까지 뭔가 짠한 감동을 주고 있는 것이 아니겠는가. 분명 지금 한화의 순위는 7위에 불과하더라도 지금 그 어떤 팬들보다도 더 기쁜 시간을 보내고 있는 팬들이 바로 한화 팬들이다. 언젠간 이 질주가 멈칫하는 날이 오더라도 야왕과 그의 팀이 펼친 아름다운 추억은 평생 가지 않을까 싶다.

스포츠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가치는 승리가 아니라 승리를 향한 열망과 최선을 다하는 그 과정, 거기에 달려 있다는 말이 누구보다도 어울리는 한화 이글스에 경의와 감사를. 그리고 야왕에게 찬사를. 이 팀을 응원하는 나 스스로에게 자부심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