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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주 내내 서른 세살의 나이로 안타깝게 세상을 떠난 최고은 감독의 이야기가 이슈가 되었습니다. 한 사람의 죽음을 두고 많은 이야기가 오고 갔습니다. 한국 영화계의 빛과 그림자가 극명하게 드러나는 사건이었습니다. '젊어서 고생은 사서도 한다', '소림사에서 무술을 배울려면 나무 베고 물부터 길러야 한다'라는 고생창연한 소리로 영화 스탭들에게 착취가 이뤄지고 있는 동안, 한쪽에서는 <아덴만의 여명>이라는 제목으로 200억짜리 블록버스터가 정부 지원으로 제작 계획에 있습니다.

진보진영 언론에서도 현정부의 복지정책의 문제점을 지적하기 위해 최고은 감독의 죽음을 정치적으로 이용했습니다. 처음 언론에서 발표된 것과 달리 최감독은 옆집에 음식을 구걸하지도 않았고 굶어죽은 것도 아니었습니다. 정치계의 보수나 진보 모두 한 사람의 죽음에 대해 관심이 없습니다. 당연히 최고은 감독이 만든 영화는 보지도 않았겠지요.

저는 이 젊은 감독의 작품을 보고 싶었습니다. 최고은 감독은 2006년에 <격정소나타>를 만들었습니다.
이 영화는 12분짜리 단편입니다. 아마 많은 사람들이 이 영화를 가지고 억지로 최고은 감독의 죽음과 연관시켜 구구한 해석을 하려할 것입니다.
저는 그러지 말기를 진심으로 바랍니다. 억지로 덧씌우려 하지말고 고인의 작품을 감상했으면 합니다.










영화는 '전국 청소년 피아노 콩쿠르'가 열리는 대기실에서 시작됩니다. 긴장한 여고생들이 서로에게 이야기를 주고 받지만 서로간에 그렇게 정이 있어보이지는 않습니다. 대기실 장면은 롱 숏과 미디엄 숏 위주로 찍혀있습니다. 미디엄 숏은 객관적인 느낌을 주고 지원자들끼리 동등한 관계인 듯한 인상을 주지만 대화를 통해 상호간의 팽팽한 긴장을 불어 넣습니다.
여기서 재밌는 것은 배우들의 반복적인 행동을 통해 대기실 분위기를 연출하는 능력입니다. 뚱뚱한 여학생은 계속 핫팩을 만지작거리면서 지원자들의 긴장감을 대변하고 있습니다. 오른 쪽에 앉아 있는 진행요원은 휴대폰을 들고 계속 전화를 하고 있는데 형식적리고도 무료한 느낌을 줍니다.









한 사람 씩 대회장 안으로 들어가면, 대기실에서는 대기자들이 한 사람씩 의자를 당겨 앉습니다. 그러다가 뚱뚱한 여학생을 사이에 두고 주인공 여선(오른쪽)과 그녀의 경쟁자(왼쪽)가 말을 주고 받는데 서로 간에 가시가 돋혀 있습니다. 대화 과정에서 여선이 예전에 피아노 콩쿠르에서 실수를 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앞서 들어갔던 학생이 나오면서 넘어집니다. 애써 부축을 하지만 경쟁자 하나가 탈락했다는 약간의 안도감 썪인 반응도 나타납니다.

















다시 왼쪽의 여학생이 "그때는 사람들이 많이 놀랐는데 오늘은 괜찮아?"하고 여선의 과거 기억을 밉살스럽게 일깨웁니다. 이때 카메라는 여선의 불안한 마음을 대회장 안에 피아노를 치는 손을 교차 편집해서 보여줍니다. 걱정에 사로잡힌 여선이 갑자기 자리에 일어나 뛰어갑니다.


















화장실에서 기저귀를 꺼내다 떨어뜨린 여선, 잠시 후 여학생들이 들어오면서 여선에 대한 이야기를 합니다. 예전 콩쿠르에서 너무 긴장한 나머지 여선이 대기실에서 오줌을 쌌다는 이야기를 하며 킬킬거립니다. 여학생 하나가 여선이 오늘도 오줌을 싸는데 만원을 건다라고 하자, 다른 여학생은 그럼 나는 어디다 돈을 거냐며 킬킬거리고 떠듭니다. 이 말에 여선은 어떤 결심을 하는 것처럼 보입니다. 여선에 대한 예전의 정보가 효과적으로 잘 전달되도록 씬을 구성한게 돋보입니다.  






여선의 차례가 다 되었는데도 여선은 아직 대기실에 보이지 않습니다. 여선의 부재를 시각적으로 보여주기 위해 대기실과 대회장 안쪽의 빈 의자를 반복해서 보여줍니다.




여선이 화장실 안에서 갑자기 나오자 세면대 앞에 서서 여선을 욕하고 있던 두 여학생이 화들짝 놀랍니다. 여선은 한 여학생에게 만원을 줍니다.
그건 자신이 오줌을 쌀거라는 걸 알리는 것이지요.












여선의 차례가 지나쳐 갈려는 찰라, 여선이 도착합니다. 그리고 대회장으로 들어갑니다. 이 장면은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대회장 안에서 대기실을 찍은 장면입니다. 그건 마치 금기의 영역에서 바깥을 바라보는 것 같습니다.


































대회장 피아노 의자에 경건히 앉아 피아노를 연주하는 여선, 곡이 점차 고조되자 그녀는 야릇한 미소를 짓는데 이어서 카메라가 그녀의 아랫도리를 비추면 오줌이 조금씩 떨어집니다. 알듯말듯한 미소가 클로즈업으로 보여지고 영화는 끝을 맺습니다.

청소년기의 불안감을 음악 콩쿠르와 연관시킨 시나리오가 돋보입니다.  아이에서 어른으로서 성장하는 통과의례의 모습을 기저귀를 벗고 배뇨 행위로 표현한 재미난 작품입니다.

최고은 감독에게 영화 연출의 많은 기회가 주어졌으면 좋았을텐데 한편의 작품외에는 대기실에서 머물다 생을 마감한 것 같아 안타깝습니다.


* 이 작품은 온라인 단편영화 상영관 <유에프오>에서 볼 수 있습니다.(http://www.youefo.com/film/film_view.html?cpage=1&idx=464)
영화는 후불제입니다. 마음에 드시면 6백원을 지불하시면 됩니다.

여기서 많은 한국 독립영화를 보시면서 한국 영화의 미래를 점쳐보시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