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혹시 양명학의 전설을 들은 적이 있는가? 하나는 핍박의 전설. 조선시대에는 책상 위에 양명학 책만 있어도 잡혀 가서 처벌되었고, 양명학자는 목숨을 잃지 않으려면 겉으로 주자학자 행세를 했다는 내용. 또 하나는 복음의 전설. 우리나라도 조선시대에 주자학을 하지 말고 양명학을 했더라면 일본처럼 일찌감치 근대화에 성공했을 텐데 지긋지긋한 주자학을 하는 바람에 근대화에 뒤처졌다는 내용. 핍박과 복음, 그야말로 전설이다. 식민지 시절과 냉전 시절, 그리고 조국근대화 시절을 살았던 우리 사회의 짓눌린 역사의식이 그려낸 빈곤한 허상이다. 오늘날에도 치유되지 않고 우리의 마음을 유령처럼 배회하는 20세기의 구시대적인 그림자이다. 하지만, 실제로 조선시대 선비들은 양명학을 어떻게 생각했을까? 그들도 이런 전설에 중독되어 있었을까? 1917년 왕양명의 문집을 정선해서 『양명집초(陽明集鈔)』를 편찬한 황병중(黃炳中 1871~1935)의 글을 보자.

내가 근고(近古) 문자를 보니 도학과 문장이 두 길로 나뉘어 있었다. 미비함을 근심하고 하나로 합하고 싶었지만 배우려고 해도 잘 되지 않았다. 입두처를 간옹(艮翁 : 전우(田愚))에게 물었더니 ‘나도 이 질문을 계전(桂田) 신상공(申相公 : 신응조(申應朝))에게 하였는데 왕양명(王陽明)의 문집을 읽게 하였네. 그래서 이 책을 구해 보고 평생의 저작(著作)을 여기에서 많이 얻었네.’라고 하였다. 내가 이로부터 구하려 하였지만 얻지 못하였다.
13년 뒤 갑인년(1914년)에 서울에 가서 이것을 사가지고 와 수시로 열람하였는데 그 격조와 음운이 맑은 물에 핀 부용(芙蓉)과 같고 선부(仙府)에서 들리는 아악과 같았다. 읽을수록 아름답고 아름다워 심지어 침식을 잊기까지 하였다. 문득 만약 고문에서 구해 본다면 소식(蘇軾)과 구양수(歐陽脩)와 가깝지만 말과 이치가 모두 도달하고 꽃과 열매가 모두 구비된 경지에 있어서는 이 두 사람도 거의 미치지 못한다.
다만 논의가 주자학과 배치되는 것이 참으로 옥의 티이다. 그 심즉리(心卽理), 치양지(致良知), 지행합일(知行合一), 미발즉이발(未發卽已發), 본체즉공부(本體卽工夫), 그리고 『대학(大學)』에 관한 여러 학설은 육구연(陸九淵)을 조술하고 다시 신기한 학설을 창도한 것이니 독자가 취사할 줄 모르면 점점 해로움이 생길 것이다. 또 위(衛)나라 임금 추(輒)의 일¹⁾을 논하며 기미를 덮어 주는 것²⁾이 올바른 이치가 아니니 추로서는 마땅히 아비를 맞이하여 나라를 바칠 뿐이지 따지고 헤아릴 필요가 없다. 공자의 정명(正名)의 의리가 마땅히 직직실실(直直實實)하고 명명백백(明明白白)하니 어찌 그렇게 임기응변을 쓸 것인가? 이런 종류는 양명의 마음씀이 순수하지 않은 것이다.
그러나 후에 이 글을 읽는 자 또한 이 때문에 그 글을 모두 버리는 것은 옳지 않다. 먼저 정주(程朱)의 법문을 세워 우뚝 흔들림이 없는 연후에 장래에 이해하고 연구하되 단지 온후자상(溫厚慈詳)하고 평이간절(平易簡切)하고 선명효창(鮮明曉暢)하고 우여완전(紆餘婉轉)한 문체를 배운다면 거의 삼대의 작자의 법이 음악 속의 기상에 근본하고 있음을 엿볼 수 있을 것이다. 옛날 주자(朱子)는 소식의 글이 이치와 어긋난다고 배척했지만 도리어 맏아들에게는 수독(受讀)하게 하였다. 모르겠지만 이치에 어긋나지 않은 것을 고른 것인가? 그렇지 않으면 어째서 이미 배척하고는 다시 읽으라고 시켰을까? 가만히 이를 본받고 싶어 함부로 설을 짓는다.
을묘년(1915년) 한겨울(11월) 회산(檜山) 황병중(黃炳中)은 적는다.

1) 위(衛)나라 영공(靈公)이 세자인 괴외(蒯聵)를 내쫓았는데 영공(靈公)이 죽자 국인(國人)이 괴외(蒯聵)의 아들 추(輒)를 세웠다. 이때 진(晉)나라에서 괴외(蒯聵)를 본국에 들여보내니 추(輒)가 이를 막았다.(『논어(論語)』「술이(述而)」)
2) 왕수인은 추(輒)가 위나라 임금이 되는 것이 합당하다고 생각했다. 이미 공자가 추를 도와 정치를 하려는 상황에 있으니 공자의 덕에 감화된 추가 아비인 괴외(蒯聵)를 맞이하고 천자와 제후에게 나라를 건네줄 것을 청하면 괴외 역시 여기에 감동을 받아 천자와 제후에게 추가 위나라 임금이 되어야 한다고 청할 것이고 결국 추가 마지못해 위나라 임금이 되어 괴외를 태공(太公)으로 높이는 것이 진정한 정명이라고 설명했다. (『전습록(傳習錄)』권상(卷上)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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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왕양명의 초상과 그의 어록인 전습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