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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 때문에 발이 묶였다.
쑥고개 꼭대기엔 종점슈퍼라는 잡화 가게가
하나 있다. 하지만 이제 여기를 종점으로 하는
버스는 남아 있지 않다. 가게 맞은편에 주차장
으로 쓰이는 너저분한 공터가 있을 뿐이다.
재미있는 것은 이 슈퍼가 새로 문을 열 때도
쑥고개엔 이미 버스 종점 같은 것은 없었다는
것이다. 종점슈퍼 자리에도 그냥 이름없는
잡화 가게가 있었을 뿐이다.
사차선 도로가 지나는 쑥고개 꼭대기엔
건널목이 하나 있다. 다음 건널목들은 양쪽 다
고개를 다 내려간 지점에 있어서 쑥고개에서
도로를 건너자면 이 건널목을 이용하지 않을
요량이 없다. 물론 무단 횡단을 감행한다면
다르지만 말이다. 개인적으로 이 쑥고개 꼭대기의
건널목을 좋아하는 편이다. 일단 파란불이 금방
금방 돌아오는 것 부터 좋은 점이랄 수 있다.
그 보다 더 좋은 점은 이 건널목에선 왠지 한적한
기분이 든다는 것이다. 그렇다고 차들이 안지나
다니는 것은 아니다. 꼭대기까지 가기 싫어
고개허리 쯤에서 무단횡단을 시도할 땐 제법
신경을 써야할만큼 수시로 차들이 지난다.
그럼에도 쑥고개 꼭대기의 건널목을 건널 때면
마치 시골 어느 마을의 철길 건널목 같은
한적함이 느껴진다. 아마 건널목 주변의 낡은
건물들 탓일지도 모르겠다. 어쩌면 지금은
없어져버린 버스 종점이 남긴 여운 탓일까?

아! 억세게 퍼붇던 비가 그쳤다. 잠시 쯤은 맞아줘도
될 정도로 빗발이 가늘어졌다.
그래서 이 글은 여기서 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