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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 최고은 감독의 죽음 이후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나 지켜봤습니다. 멀리 있는 이라크의 인민이나 가까이 있는 이곳의 인민이나 다 소중한 사람인 건 매 한가지겠습니다. 그런데 이라크 인민의 해방이 준비됐다는 소식에 기쁘기보다는 가까운 곳에 사는 한 사람의 죽음을 막지 못했다는 죄책감이 더 컸습니다.

그런 심정으로 이라크의 해방을 경축하는 트윗을 티비 문자 지나가듯이 물끄러미 지켜봤습니다. 그러는 트윗 사이에 굶어죽을 정도면 왜 편의점 알바는 왜 안했냐는 트윗이 보이더군요. 두 번 생각할 것도 없이 그 멘션을 날린 트위테리안을 언팔했습니다. 누군지조차 알고 싶지 않았습니다.

제겐 그 트윗이 '굶어죽을 바엔 노예가 되라'라는 말로 들렸습니다. 사실 편의점 알바나 식당 아주머니도 당당한 직업이고 노예의 상태는 아닙니다. 그 직업을 선택해 자신의 미래와 자녀의 미래를 준비하시는 분이 많습니다. 그럼에도 그 트윗이 경멸적으로 들린 이유는 무엇일까요.

자본주의 사회가 보장한 직업 선택의 자유조차도 앗아가는 인간이 아닌, 노예의 삶을 살기를 강제하는 말로 들렸기 때문입니다. 최고은 감독은 능력이 있었고, 몇 번의 기회가 왔을 때 그 기회를 잡았습니다. 다만 불공정한 계약과 영화계의 불합리한 관행으로 자신이 받아야 할 정당한 대우를 받지 못했던 것입니다.

재능의 문제도, 성실함의 문제도 아닌 잘못된 외부적 조건으로 인해 그 상황에 처해진 것입니다. 거기에 열정과 노동력을 착취당하며 겪었을 심한 정신적 육체적 고통으로 인해 건강도 좋지 못했습니다.

자본주의 사회라면 정당한 경쟁에서 승리하여 능력을 인정받은 사람이라면 그에 걸맞는 대우를 해줘야 합니다. 경쟁에서 승리한 사람에게까지 년 평균 273만원이라는 도저히 상상도 할 수 없는 삶의 조건을 제공하는 영화판이 제대로 된 곳이겠습니까.

더 이상 눈을 낮출 수 없는 열악한 조건 속에서 기약없는 재능의 개화를 기다리며 열악한 조건을 감내했던 열정을 가진 자였습니다. 그런 사람에게 편의점 알바와 식당에 나가 일을 하라고 하는 것은 기존의 불합리함을 모두 감내한 채, 생계마저 다른 것으로 연명하며 살라는 것입니다.

정당한 계약 내용을 보장받지 못하며, 이중의 착취를 묵묵히 겪으라는 말은 바로 노예가 되라는 말과 무슨 차이가 있을까요.

'노예가 되라', 다른 사람의 삶을 너무나 쉽게 노예화시키는 감수성 없는 사람들에게 분노를 전합니다.